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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여행

옛 사람들의 삶터, 현재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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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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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풍산 류씨 씨족마을로 조선 시대 때 번성한 대표적인 씨족 마을이다. 하회탈로도 유명하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글 이규영 / 참고 안동하회마을 누리집 


경상북도 안동에는 씨족 마을이 유달리 많이 있다. 풍산 류씨의 하회마을, 의성 김씨의 내앞마을· 지례마을, 전주 류씨의 무실마을·박실마을, 안동 권씨의 가일마을, 진성 이씨의 주촌마을·온계마을, 풍산 김씨의 오미마을, 한산 이씨의 소호마을 등이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안동에 많이 거주한 영향이다.
하회마을은 안동 씨족 마을 중 가장 유명하다. 마을 주민의 약 70%가 풍산 류씨다. 풍산 류씨는 입암 류중영, 귀촌 류경심,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 등 조선 시대 많은 유학자와 정치가를 배출한 영남지방의 대표적 명문(名門)이다. 류성용은 조선 선조 때의 명신으로 이순신을 조정에 천거했고 임진왜란 관련 중요 역사기록인 『징비록』을 썼다. 또 류씨 문중에서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물도 1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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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가 처음부터 풍산 류씨의 마을은 아니었다. 김해 허씨, 광주 안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이미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고려 말 입향조인 류종혜가 벼슬을 마치고 낙향해 하회에 터를 잡았다. 이후 16세기에 이르러 류씨 문중이 크게 번성하면서 허씨, 안씨 사람들이 점차 마을을 떠났고 18세기 이후에는 풍산 류씨만 마을에 남게 되었다.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있다. ‘허씨가 터를 닦아 놓으니 그 위에다 안씨가 집을 짓고, 류씨는 안씨 집 앞에서 잔치판을 벌였다’는 뜻이다. 마을 역사를 고스란히 함축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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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에는 풍산 류씨 종택이 두 곳이다. 겸암 류운룡의 종택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종택 충효당이다. 각각 입암 류중영의 장남과 차남이다. 형제가 같은 마을에서 종가를 이룬 것은 매우 드물다.

 

 

낙동강이 감싸 도는 풍산 류씨들의 삶터 
낙동강이 마을 전체를 감싸 돌아 하회다. 하회(河回)란 ‘강물이 돌아 흐른다’는 의미다. 마을 지형은 풍수지리적으로 ‘산태극 수태극(山太極水太極)’,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행주형(行舟形)’이다. 산과 강이 태극 모양처럼 마을을 감싸 돌고, 마을 모습이 마치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하고,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의 길지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이중환이 쓴 지리서 『택리지』에는 ‘시냇가에 살기에 좋은 곳으로는 영남의 도산과 하회를 제일로 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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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적 이점, 양반가의 품격을 갖춘 마을은 자연경관 또한 수려하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고운 모래밭, 그 모래밭을 따라 서 있는 푸른 솔숲 만송정(천연기념물 제473호), 만송정을 가로질러 강 쪽으로 나오면 우뚝 솟아오른 부용대의 절벽, 부용대 앞쪽 여러 바위 중 하나인 능파대의 위엄 등이 빼어나다. 특히 부용대와 능파대 위에 서면 마을 전경을 눈동자에 가득 담을 수 있다. 우뚝 솟은 솟을대문, 소담스런 초가지붕, 골목골목 만나게 되는 토담과 마을 정중앙에 자리한 수령 600년이 넘는 삼신당 신목도 예스러운 정취로 가득하다. 

 

 

하회의 문화유산과 지정문화재들
600여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하회에는 다양한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이 많다. 유네스코는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등재 이유를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의 삶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하회마을은 크게 살림집과 서원, 정자, 정사로 이뤄져 있다. 총 127개의 가옥이 있는데 이중 12개 가옥은 보물 및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보물로는 양진당(제306호)과 충효당(제414호)이, 중요민속자료로는 화경당(제84호), 원지정사(제85호), 빈연정사(제86호), 작천고택(제87호), 겸암정사(제89호), 염행당(제90호), 양오당(제91호), 하동고택(제177호) 등이 있다. 모두 류씨 집안의 소유이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양진당, 충효당, 화경당(북촌택), 염행당(남촌택), 옥연정사, 겸암정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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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마을 중심에 위치한 양진당(보물 제306호)은 충효당과 함께 마을를 대표하는 가옥이다. 풍산 류씨 대종가로 입향조인 류종혜가 처음 터를 잡은 곳으로 전해진다. 하회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터를 잡을 당시 지은 사랑대청이 지금도 남아 있다. 원래는 99칸의 대저택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53칸이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 ‘입암고택(立巖古宅)’의 글씨는 명필 한석봉의 것이다. 류중영의 호를 따 입암고택이라 불렸다가 7대손인 류영의 호인 양진당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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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촌을 대표하는 충효당(보물 제414호)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양진당 건너편에 있다. 전형적인 사대부 집의 위용을 자랑하는 52칸 집이다.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류성룡이 살던 집은 아니다. 그의 사후에 제자들과 손자가 추모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대청마루에 걸린 현판은 조선 중기 전서체 명필로 꼽히는 허목의 필체다. 허목은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바 있다. 류성룡이 충과 효를 겸비한 인물이라는 의미로 충효당이라 했다. 한편 충효당 남쪽 사당 앞에는 문화재 관리국에서 류성룡 유물기념관으로 지은 영모각이 있다. 이곳에는 서애의 주요 저서와 유품 등이 소장되어 있는데 국보 132호 『징비록』이 유명하다. 서애의 나머지 저술들은 보물 제160호로, 주요 유품들은 보물 제460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98년)을 회고한 책이다.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정세에서부터 임진왜란의 실상과 전쟁 후의 상황까지 상세하게 기술했다. 특히 백성들이 겪었던 전쟁의 참상은 물론 일본의 만행을 성토하고, 당시 조선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후대에 교훈을 주고자 했다. ‘징비(懲毖)’란 『시경』 속 구절에서 따온 말로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는 뜻이다. 
북촌 중심에 자리한 화경당(중요민속자료 제84호)은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마을 가옥 중에서 솟을대문이 가장 우뚝하다. 북촌댁으로도 불리며 원래 99칸 대저택이었지만 지금은 54칸만 남아 있다. 정조 21년(1797)에 처음 지어진 후 경상도 도사를 지낸 류도성이 철종 13년(1862)에 지금의 대저택으로 증축했다. 안채, 사랑채, 큰 사랑채, 대문간채, 사당 등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사대부가다.
충효당과 함께 남촌을 대표하는 사대부 가옥, 염행당(중요민속자료 제90호). 남촌댁으로도 불린다. 원래는 99칸 대저택이었으나, 1954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고, 현재는 대문간채와 별당, 사당만 남아 있다. 
한편 겸암정사, 옥연정사는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가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기르기 위해 세운 정자다. 인적이 드문 곳에 지어진 두 곳은 부용대를 마주보며 자리 잡고 있다. 옥연정이라고 하는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는 부용대 오른쪽 기슭에 자리한다. 류성룡이 승려 탄홍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스님이 10여 년 동안 시주해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류성룡은 이곳에서 『징비록』을 집필했다. 옥연이라는 이름은 바로 앞에 흐르는 깊은 연못의 물빛이 마치 옥과 같이 푸르고 맑아 그 물빛을 따서 지어졌다. 겸암정사(중요민속문화재 제89호)는 류운룡이 명종 22년(1567년)에 수학과 제자 양성을 위해 지었다. ‘겸암정’이란 현판은 스승인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

 

 

한국인의 얼굴, 하회탈
마을을 상징하는 또 다른 한 축은 하회탈이다. 국보 제121호인 하회탈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이다. 고려 말인 12세기경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총 12개 중 현재는 9개의 탈만 전해진다.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탈이다. 별채, 총각, 떡다리 등 3개의 탈은 분실되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회탈춤 또한 하회별신굿탈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굿과 탈놀이를 결합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5년 또는 10년에 한 번 정월 보름날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열렸다. 별신굿이란 몇 년에 한 번씩 무당들을 불러 치르는 큰 굿이지만 하회에서는 특이하게도 무당을 부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별신굿을 했다. 별신굿의 한 부분인 탈놀이 역시 사당패가 아닌 마을 사람들 중에서 뽑아 각각의 역할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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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정보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입장료(일반) 어른 5천 원, 청소년 2천5백 원, 어린이 1천5백 원
문의 하회마을 관광안내소 054-852-3588, www.haho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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