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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글을 멋스럽게 차려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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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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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패션이라는 옷을 입었다. 한글 패션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다. 2006년, 그는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 특별 기념 패션쇼에서 의상에 한글을 패턴처럼 그려 넣었고 이내 해외 패션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글 김남희 / 사진 강정호


한글 문자와 한글의 다양한 서체를 응용한 옷들. ‘한글 패션’이 해외 유명 브랜드에도 등장했다. 벨기에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는 2018 봄/여름 컬렉션에서 한글 패션을 선보였다. 크리스찬 디올, 캘빈 클라인의 예술감독 출신으로,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독립 브랜드 라프 시몬스와 프라다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당시 그는 ‘아메리카’라는 한글이 가미된 레터링 티셔츠를 선보였다. 또 아디다스와의 협업에서는 ‘자연이 빚은 상주곶감’이란 문구의 운동화를 선보였다. 
미국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도 한글 의상을 입었다. 퍼렐은 2018년 NBA 올스타전 하프타임 쇼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당시 그가 입은 가죽 재킷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내 맘대로’라는 한글 문구가 적혀 있었다. ‘Bajowoo(바조우)’ 이름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박종우의 브랜드였다.
한글이 한류 열풍과 더불어 하나의 문화로서 관심을 받고 있다. 한글만이 가지고 있는 미적인 요소에 주목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에 그래픽적 요소로 한글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K팝 열풍도 한 몫했다. 노래 속 한글 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명 해외 브랜드에서 한글 의상을 선보이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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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패션, 그 대중화를 견인한 것은 디자이너 이상봉으로부터다. 우리나라 역대 영부인과 비욘세, 리한나, 레이디 가가, 줄리엣 비노쉬 등 세계적인 셀레브리티들이 그의 의상을 입었다. 스포츠 스타 김연아가 2010 세계피겨스케이팅 대회 프리스타일 종목에서 입었던 의상, 각종 아이스쇼에서 입었던 의상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또한 그의 의상들은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영국 런던), 파워하우스 뮤지엄(호주 시드니), 웰트 뮤지엄(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세계의 유서 깊은 박물관에 영구전시되어 있다. 

 

 

Q. 1980년 디자이너로 데뷔했으니 올해 디자이너 인생 40년을 맞으셨습니다.


아, 올해가 벌써 40주년이 되었나요? 세월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네요. 그런데 저는 37살 때 제 생물학적 나이를 버렸습니다. 그 무렵 디자이너로서 너무 힘들었고 어떤 한계점을 느꼈죠. 더 이상 나이를 먹으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로 은퇴하기 전까지 저는 언제나 37살에 머물기로 결심했어요. (웃음)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매년 진화하는 37살이고 싶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 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 주기를 소망했고, 내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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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디자이너로서 특별했던 순간과 의미 있는 발전의 계기들이 궁금합니다.


연극을 전공했지만 패션으로 눈을 돌린 뒤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습니다. 1980년대 처음으로 파리를 갔을 때, 패션을 어떤 예술 그 이상의 것으로 여기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당시만 해도 세계 패션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는 여전히 비주류였지만 세계 문화 경쟁에서 우리만의 위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글을 만난 건 내게 행운입니다. 한글 디자인으로 나 자신도 몰랐던 한국적 정서를 통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제 패션은 한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소나무, 전통가구, 산수화, 단청, 조각보 등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는 바람이고 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착된 스타일보다 내가 지금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어떤 것에 감동받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상봉의 패션은 언제나 진행형입니다.

 

 

Q. 한글 디자인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한글 패션을 도입했을 때 주변 반대가 심했죠. 한글 도안이 촌스럽다 등 반대 이유가 다양했습니다. 2005년에 처음 한글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안감, 소매 접히는 부분 등에 훈민정음을 살짝 보여줬습니다. 그러다 2006년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글 패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외국 디자이너들이 “이 패턴은 무엇을 응용한 것이냐”, “곡선과 직선의 조화가 탁월하다” 등 호응이 아주 컸어요. 그때 큰 감동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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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글 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2005년부터 지금까지 한글 작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의상뿐만 아니라 휴대폰, 도자기, 자동차, 아파트, 다이어리 등 다양한 제품에도 한글 디자인을 접목했습니다. 행남자기와 협업해 디자인한 윤동주의 ‘서시’를 넣은 생활 도자기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 영구전시된다는 소식은 매우 뜻깊었죠.

 

 

Q. 한글 패턴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디자이너인 제가 한글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은 결국 디자인을 통해서죠. 한글 작업 초기에는 훈민정음을 이용한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타이포그래피, 즉 손글씨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손글씨를 잘 쓰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노래하는 장사익 선생과 화가 임옥상 형이었죠. 장사익 선생의 글씨는 물과 같고, 임옥상 형은 불 느낌의 손글씨였어요. 그들의 손글씨를 옷에 담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여러 서예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붓글씨 패턴을 다양화해서 한글 의상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한글을 해체하거나 다시 조립하고 거기에 컬러를 입혀가면서 새로운 한글의 조형적인 진화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글 문장보다는 단어 자체의 문자적 형태와 의미에 집중했습니다. 가령 과거에는 윤동주의 시를 의상에 입혔다면 지금은 하늘, 별, 어머니 등 좋아하는 단어로 레터링했어요. 또 큰 변화라면 기존에는 원단에 프린팅이나 자수로 한글을 새겼다면 올해부터는 훈민정음체를 직접 원단으로 직조해서 한글 의상을 만듭니다. 

 

 

Q. 패션 디자인 외에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계획은?


2017년부터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 석좌교수로 적을 두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일로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패션 콘테스트를 열고 있는데 2016년 시작해 올해까지 벌써 다섯 번의 콘테스트를 마쳤습니다. 고교 모델 콘테스트도 시작했습니다. 이 일에 대한 관심과 애정, 사명감이 큽니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고 싶고 유능한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 꿈나무들을 더 많이 발굴해 해외에서도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습니다. 함께 도움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꿈을 더 크게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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