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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창의성과 사람다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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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연구하는 문자학자 가운데 한글의 독창성과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창의성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한글이 산스크리트 문자나 파스파 문자, 가림토 문자 등을 모방했다는 설이 아직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모방설의 핵심을 비판하고 한글의 놀라운 가치를 무려 130년 전에 주창한 서양의 젊은이가 있다.


글 김슬옹(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한글혁명』·『한글교양』 저자)


1886년, 23살의 앳된 미국 청년이 조선 땅을 밟았다. 헐버트(HULBERT, H. B. 1863~1949)였다. 고종 임금이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을 세우면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한테 교사 파견을 요청해 선생님 신분으로 온 것이다. 이때는 새파랗게 젊은 이방인이 세종대왕 다음으로 한글의 특성과 가치를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한글로 쓴 최초의 학자가 되리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특히 한국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학자가 되리라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그는 대학교 때 이미 7개 국어를 공부한 언어 영재라 그런지 조선에 오자마자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 한국어의 섬세한 문법에 푹 빠져 들었다. 

 

 

미국 청년이 주목한 한글의 가치
3년이 흐른 1889년, 한국어와 한글에 능통해진 그는 26살의 나이로 미국 잡지 <뉴욕 트리뷴(New York Tribune)>에 <THE KOREAN LANGUAGE(조선어/한국어)>라는 소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모두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한글 관련된 부분만 소개한다.
헐버트는 조선에는 모든 소리를 자신들의 고유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진정한 문자가 존재하는데, 표음문자(음소문자) 체계의 모든 장점이 한글에 녹아 있다고 평가했다. “글자 짜임새가 한글의 간결성에 견줄만한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헐버트는 한글을 표음문자 산스크리트 문자와 비교하면서, 한글은 완벽한 문자가 갖춰야 하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산스크리트 문자와 비교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보았다. 곧 훌륭한 문자는 간결해야 하고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정확하게 혼란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소리를 모호함 없이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글자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글자 수가 많아서는 안 되고 최소의 글자 수로 최대의 표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보았다. 산스크리트 문자도 음소문자이지만 한글은 음소문자의 보편적 조건이나 기능에서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한글이 간결하다는 것은 산스크리트 모음자와 한글 모음자를 비교한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다. 헐버트는 실제 예를 들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몇 글자만 비교해 보면, 산스크리트 문자는 곡선이 많고 복잡한 데 비해 한글은 직선 위주의 간결한 도형이다. 

 

 

히_산스크리트.jpg

 

파스파 문자 모방설도 마찬가지다. 파스파 문자는 훈민정음보다 약 170년 앞선 원나라 세조 때 제정된 문자로 훈민정음은 이 문자를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설이다. 
산스크리트 문자든 파스파 문자든 음소문자이므로 당연히 세종대왕도 참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 도형으로 쉽게 구별되는 한글의 자음자와 모음자와는 달리 이들 문자들은 그렇지 않다. 

 

 

히_파스파.jpg

 

헐버트가 이런 도형 또는 문자 디자인의 차이에 주목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다. 헐버트는 한글 모음자는 모두 짧은 가로선과 세로선 또는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고 하고 자음자도 거의 비슷하게 단순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음자와 모음자 도형의 간결함, 자음자와 모음자가 도형 차이에 따른 구별 효율성, 거기다가 자음자와 모음자를 결합했을 때의 생성 결과에 대해 더 의미를 부여했다. 더불어 문자는 발음 표기를 위해 존재하므로 ‘일자일음주의’는 인류 문자의 꿈인데 그런 꿈이 15세기부터 조선에는 이미 이루어져 내려오고 있다며, 감탄을 쏟아 냈다. 

 

 

한글의 문자 인문주의
한글이 다른 문자를 모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점이 있다. 한글에 담긴 사람다움의 가치다. 헐버트는 1891년 최초의 한글 전용 인문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펴냈다. 인문지리 교과서인데도 책 제목을 “선비 지식인이든 일반 백성이든 누구든 알아야 하는 지식”이라는 뜻의 “사민필지(士民必知)”로 지은 의도에서 그가 왜 한글 전용으로 책을 저술했는지 알 수 있다. 
책 머리말에서 헐버트는 “중국 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 언문은 본국(조선) 글자일 뿐만 아니라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쉽다.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매우 요긴할 터인데 사람들이 중요한 줄 알지 못하고 반대로 업신여기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를 정확히 보고, 조선의 지식인들과 지배층이 400년 넘게 한글을 주류 문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비판한 것이다. 바로 누구나 평등하게 배워서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문자 인문주의, 문자 휴머니즘이야말로 한글이 지니고 있는 가장 독창적이고 위대한 가치다. 『사민필지』가 나온 지 3년 뒤인 1894년에 고종 임금은 한글이 한자보다 더 중요한 주류 공식문자라고 선언했으니 헐버트의 선견지명이 지금 생각해 봐도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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