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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멋

한글, ‘가시리’를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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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애민정신을 담아 백성을 위한 문자를 창제했고, 일제강점기 국어학자들은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켜 내며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한글의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글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사건 또는 인물들이 무수히 많다.

 

글 정재환(한글학자,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1977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이명우가 부른 노래 ‘가시리’는 이스라엘 민요 ’장미 가득한 저녁(Erev shel shoshanim)‘에 고려가요 ‘가시리’와 청산별곡‘의 노랫말을 얹은 것이었다. 고려인들은 ‘가시리’와 ‘청산별곡’을 불렀지만, 글로 남기지는 못했다. 단언하기 어렵지만, 우리말 가사를 한자로 적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리가 비슷한 글자를 찾아 ‘加時里利古(가시리이고) 斡利斡利 斡羅成(알리알리 알라성)’이라고 표기할 수 있었겠지만, 본디 노랫말과 사뭇 달라진다.

 

 

마당쇠와 돌쇠라 불린 사람들

고려는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나라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 고려인들이 부르던 노래는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게, 다시 아들에게 구전되다가, 15세기에 이르러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함으로써 비로소 글로 기록될 수 있었다. ‘가시리’와 ‘청산별곡’은 조선 중기에 편찬된 <악장가사>와 <시용향악보>에 수록되었다. 馬堂金과 乭金. 이들은 누구일까?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마당쇠(馬堂金)와 돌쇠(乭金)다. 조선 시대 노비문서에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지만, 행정문서에서는 한문과 이두를 많이 사용했다. 이두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인 고대에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할 때 고안된 표기법이다. 이두 표기에서는 한자를 소리로도 읽고 뜻으로도 읽는다. ‘마당’은 소리가 비슷한 한자 ‘馬堂’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한자에는 ‘쇠’와 소리가 비슷한 글자가 없어서, 뜻이 ‘쇠’에 해당하는 ‘金’ 자를 쓰고 ‘쇠’로 읽었다. ‘乭(돌)’은 흥미로운 글자다. ‘乭’은 중국 한자가 아니고 조선사람이 만들었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훈민정음 창제 이후인 것은 분명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쇠’를 ‘金’이라 쓰듯이 ‘石’이라 쓰고 ‘돌’이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石’ 아래 ‘ㄹ’과 비슷하게 생긴 ‘乙’ 자를 받쳐 좀더 확실하게 ‘돌(乭)’이라고 읽었다. 아마도 마당쇠와 돌쇠는 노비문서에 적힌 자신들의 이름조차 몰라봤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글의 시련과 한글 전용 운동

1910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동화정책을 수립해 조선인을 일왕의 신민으로 만들려고 했다. 학교에서는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가르쳤다. 1938년부터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기 시작했고, 1940년대 들어서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일본어 상용을 강요하면서 조선어 말살에 돌입했다. 1942년 10월 1일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조선어를 연구하며 <조선어사전>을 만들던 조선어학회 학자들마저 감옥에 집어넣었다. 일제가 없애려는 조선어를 지키려 했기 때문이었다. 해방 후 조선어학회는 한글 전용 운동을 펼쳤다. 교과서에서 한자를 폐지했고, 거리의 간판도 ‘漢城商會’라고 쓰지 말고 ‘한성상회’라고 쓰자는 운동을 펼쳤다. 물론 한자를 좋아하는 지식인들은 반대했다. 보성전문학교 교장 현상윤은 ‘언문이란 여인네들이나 가르칠 것이지, 당당한 남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서 무식쟁이를 만들자는 말인가?’라면서 맹렬히 반대했다. 요즘 같으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여성비하 발언이었다. 그러나 조선어학회는 무소의 뿔처럼 한글 전용 운동을 추진했고, 1948년 ‘한글전용법’ 제정을 이끌어 냈다. 그렇다고 해서 한글 전용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20세기 후반까지도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은 혼전을 벌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한글 전용 시대를 살고 있다. 관공서 앞에서 한자를 대필해 주던 그 많던 대서소들도 문을 닫았고, 신문지상의 한자도 자취를 감췄다. 한글 덕분에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게 되었다. 문맹률 2% 미만의 문명국가 대한민국은 바로 한글이 빚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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