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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여행

조선 시대 유교적 전통을 간직한 씨족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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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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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위치한 양동마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씨족 마을로 6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됐다. 119채의 전통기와집, 70여 채의 서양식 기와집, 79채의 초가로 이루어진 마을은 조선 시대 전형적인 양반마을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택, 살림집, 정자, 서원, 서당 등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 관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의례, 민속놀이, 문헌 등 많은 문화유산들을 보유하고 있다. 


글 이규영 / 참고 경북 경주 양동마을 누리집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모인 씨족 마을이다. 현재 월성 손씨 40여 가구, 여강 이씨 70여 가구가 모여 산다. 씨족 마을이란 같은 성씨를 가진 혈연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마을을 말한다. 조선 시대 때 크게 번성했다. 마을의 입지와 구조는 풍수지리와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명당의 조건인 배산임수(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하는 지형)에 터를 잡고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종가와 사당을 배치시켜 이를 중심으로 집들이 들어선다. 마을 길은 입구에서 종가에 이르는 중심도로를 두고 자유롭게 각 집을 연결한다. 

 


월성 손씨, 여강 이씨의 씨족 마을
씨족 마을은 ‘개척입향(開拓入鄕)’과 ‘처가입향(妻家入鄕)’으로 만들어진다. 개척입향은 새로운 살 곳을 찾아 이주해 정착한 것이고 처가입향은 남자가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양동마을은 처가입향의 씨족 마을이다. 
원래 양동리는 풍덕 류씨가 살던 곳이었다. 고려 말 여주에서 이주해온 여주 이씨 이광호의 손자사위가 된 풍덕 류씨 류복하가 처가살이를 하면서 마을에 정착했다. 처가입향이다. 마을의 번성은 월성 손씨 또는 경주 손씨로부터다. 참고로 월성은 경주의 옛 이름이다. 류복하의 무남독녀와 월성 손씨 손소가 혼인하면서 처가인 양동리에서 살게 되었다. 역시 처가입향이다. 여주 이씨의 처가입향은 손소의 고명딸과 여주 이씨 이번이 혼인하면서다. 이후 마을은 손씨와 이씨 중심의 씨족마을이 되었다. 여주 이씨 경주파를 독자적으로 여강 이씨라고 한다. 특히 손중돈, 이언적은 마을을 대표하는 역사인물이다. 손소의 둘째 아들인 손중돈(1463~1529년)은 청백리(청렴결백한 관료에게 조정에서 내리는 칭호)로 이름난 문신이었다. 이번의 첫째 아들 이언적(1491~1553년)은 조선 성리학의 기반을 마련한 뛰어난 학자였다. 그의 사상은 퇴계 이황에게 전해져 영남학파의 학문적 토대가 되었다. 이언적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황과 더불어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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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문화유산
양동마을은 역사가 유구한 마을답게 중요 문화재도 많다. 국가지정문화재 18점, 도지정문화재 5점, 시지정문화재 9점 등 총 32점이 있다. 마을 한 곳에 이렇게 많은 지정문화재가 있는 것은 유례가 없다. 덕분에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중 대표적인 유물로는 『통감속편』(국보 제283호)과 마을 입향조인 손소의 초상화인 ‘손소 영정’(보물 제1216호)이다. 『통감속편』은 중국 원나라 때 진경이란 인물이 중국고대사부터 남송시대까지 역사를 편찬한 역사책이다. 1422년 세종 때 우리나라에서 발간되었는데 금속활자로 인쇄되어 있어 서지학 및 고인쇄기술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다. ‘손소 영정’은 성종 7년(1476년) 도화서 화원이 그렸다. 15세기 말에 그린 초상화로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마을 나들이는 총 7가지 코스다. 
코스별 주요 장소를 소개한다. 

 



하촌 코스
조선시대로의 문화기행
안락정→이향정→강학당→심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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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서당이 3곳이다. 여강 이씨 문중의 강학당, 경산서당 그리고 월성 손씨 문중의 안락정이다. 안락정은 중요민속자료 82호로 정조 4년(1780년)에 건립된 손씨 문중의 서당이다. 강학당은 중요민속자료 83호다. 이씨 문중의 서당으로 고종 4년(1807년)경에 지어졌다. 이향정은 중요민속자료 79호로 온양군수를 지낸 이범중이 살던 집이다. 숙종 21년(1695년)경에 지어졌다. 이향정이란 이름은 이범중의 호를 따른 것이다. 심수정은 향단에 딸린 정자다.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을 추모하기 위해 명종 15년(1560년)경에 지어졌다. 철종 때에 한 번 소실된 적이 있었고 지금의 집은 1917년 중건한 것이다. 중요민속자료 8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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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골 코스
마을의 정취를 한눈에

무첨당→대성헌→물봉고개→물봉동산→영귀정→설천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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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411호인 무첨당은 여강 이씨의 종가다. 이언적의 아버지 이번이 살던 집이다. 세조 6년(1460년)경에 지었다. 무첨당은 이언적의 맏손자인 이의윤의 호로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오른쪽 벽에는 흥선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대성헌은 영조 8년(1732년)에 건립되었다.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낸 이재직이 살던 집이다. 대성헌이라는 이름은 앞산 성주봉을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영귀정은 향토문화재다. 이언적이 젊은 시절 이곳에 초가집을 지어 학문을 수학하던 곳을 후손들이 정자를 세워 추모했다. 설천정사 역시 정자다. 산 언덕 숲 속에 위치했는데 선조 35년(1602년) 이언적의 셋째 손자인 이의활이 지었다.

 



수졸당 코스
옛것의 멋스러움
경산서당→육위정→내곡동산→수졸당→양졸정


경산서당은 향토문화재다. 이언적의 맏손자 이의윤을 봉향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던 서당이었다. 1835년경에 이웃 안계리에 있었는데 댐 건설로 1970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육위정은 선조 24년(1591년)에 지었다. 원래는 이언적 선생의 넷째 손자인 이의잠이 분가한 집이었는데 수졸당이 건축되면서 정자로 사용했다. 이곳에서 6형제가 태어나 자손들이 번성하라는 뜻에서 육위정이라 칭했다. 수졸당은 중요민속자료 78호다. 이언적의 손자 이의잠의 호를 따서 지은 집이다. 광해군 8년(1616년)에 지어졌다. 양졸정은 내곡입구 왼쪽 산언덕에 있다. 이언적의 둘째 손자인 이의징의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정자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8년에 다시 지었다.

 



내곡 코스
독특한 가옥 구조로 이루어진 고택들
근암고택→상춘헌→사호당→서백당→낙선당→창은정사→내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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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암고택은 중요민속자료 76호다. 안골로 들어가는 입구 우측 산등성이에 위치한다. 정조 4년(1780년)경에 지은 집이다. 근암고택 옆에 자리한 상춘헌은 중요민속자료 75호다. 상춘고택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영조 6년(1730년)경에 지어졌다. 상춘헌이라는 이름은 후손인 이석찬의 호를 따랐다. 사호당은 중요민속자료 74호다. 안골로 들어가는 중간 위치 우측 산등성이에 있다. 사호당고택으로도 불린다. 이능승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헌종 6년(1840년)에 지었다. 안골 중심지에 자리잡은 서백당은 월성 손씨 종가다. 손소가 성종 15년(1454년)에 지었다. 서백당(書白堂)이란 명칭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다. 현재 중요민속자료 23호로 지정됐다. 낙선당은 중요민속자료 73호다. 손중돈의 동생 손숙돈이 분가해서 살던 집이다. 당시 양반 부잣집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두곡 코스
두곡 선생과 그 후손들의 숨결

두곡고택→영당→동호정


두곡고택은 중요민속자료 77호다. 이언적의 6대손인 이식중이 영조 6년(1730년)경 지어 살던 집이다. 후에 이언괄의 14세손인 이조원이 살았는데 그의 호를 따라 두곡고택이라 부르게 되었다. 영당은 향토문화재다. 영정을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다. 이언적의 넷째 손자인 이의잠의 영정을 모시는 곳으로 인조 14년(1636년)경 지었다. 이의잠이 하양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고을 사람들이 그의 덕을 추모하여 영정을 그렸다. 동호정은 이의잠을 위한 정자다. 

 



향단 코스
조선조 청백리들의 기상
정충비각→향단→관가정→수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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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412호인 향단은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다. 화려한 지붕이 눈길을 끈다. 이언적이 중종 38년(1543년)경에 경상감사로 부임할 때 중종 임금이 지어 준 집이다. 관가정은 보물 442호로 손중돈이 살던 집이다. 관가정(觀稼亭)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이다. 관가정에서 바라본 형산강과 경주를 품어 안는 경관이 일품이다. 수운정은 중요민속자료 80호다. 선조 15년(1582년)경에 손중돈의 증손 손엽이 지은 정자다. “물과 같이 맑고 구름같이 허무하다”는 수청운허(水淸蕓虛)의 뜻을 따서 수운정(水蕓亭)이라 했다.
마지막 코스는 마을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대표적인 가옥만 둘러본다. 서백당, 무첨당, 향단, 관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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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정보
주소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93
마을 관람료 어른 4,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
관람시간 하절기(4~9월) 09:00~19:00, 동절기(10~3월) 09:00~18:00
문의 054-762-2630, yangdong.inv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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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니 2020.06.25 16:31
    좋은 정보네요~~~
    한옥과 한우~ 잘 어울리는 우리 한국입니당~
    한국 ,한글, 한복, 한식, 한옥, 한우~~~ 최고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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