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음식 세계사

제국을 만들고 전쟁과 혁명을 일으킨 소금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히shutterstock_98345939.jpg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는 모두 농사가 가능하며 주변에 소금이 나는 강 하류에서 시작했다. 작은 도시 국가였던 로마는 소금으로 대제국이 되었다. 세계사를 뒤흔든 소금의 역사다.


글 진주영 참고도서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 이야기』(홍익희 저, 행성B잎새)


오늘날 소금은 억울하다. 건강식이 강조되면서 건강을 위협하는 식품으로 눈칫밥을 먹고 있다. 고혈압이나 각종 성인병에서 소금 섭취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단코 소금은 건강의 적이 아니다. 과잉 섭취가 성인병과 연관이 있어 나쁘다고 하면 맞다. 그러나 소금 자체가 무익하다고 하면 틀리다. 짜게 먹는 습관이 건강의 적이다. 아무리 좋은 식품이라도 많이 먹으면 탈 난다. 사실 굳이 위험성을 따지자면 지나친 저염식이 건강의 적이다. 우리 몸속 소금 농도가 낮아지면 현기증과 근육 경련이 일어나고 심하면 혼수상태 또는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소금은 나트륨이 아니다
그러나 소금이 진짜 억울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소금과 나트륨이 같다는 사람들의 오해다. 정확히 말하면 소금은 염소(60%)와 나트륨(40%)으로 구성된 염소화합물(NaCl)이다. 그래서 소금 섭취량과 나트륨 섭취량은 다르다. 소금은 외치고 싶다. “의사 선생님들! 제발 저와 나트륨을 구분해 주세요.”
소금은 그저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소금을 얻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치열했다. 소금은 곧 권력이요 부의 상징이었다. 소금이란 명칭 자체가 ‘작은 금’이라는 뜻의 소금(小金)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귀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 로마 병사들은 봉급으로 소금을 받았다.

 

히shutterstock_1265584438.jpg

 

 

로마의 소금길, 제국을 만들다
로마는 남부 이탈리아 반도의 조그만 어촌에서 소금 거래를 하던 몇몇 상인들이 모여 만든 작은 도시 국가였다. 로마 근교 테베레 강 하구에 인공 염전이 만들어졌는데 유럽 최초의 인공 해안염전이다. 로마인들이 해안에서 대량으로 소금을 생산하면서 로마는 소금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로마에서 대륙으로 소금이 운반되던 길을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 즉 소금길이라고 불렀다. 교역로였던 소금길은 훗날 전쟁길로 이용되면서 대제국 로마의 기반이 되었다. 지금도 로마 근교에 가면 소금길이란 이름의 도로가 남아 있다. 그러나 1세기경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로마는 염전을 잃게 된다. 소금 수출로 쌓았던 부는 급격하게 소진됐고 흑해에서 소금을 수입해야 했다. 이후 로마 경제는 급격하게 무너졌고 제국도 쇠퇴했다.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소금
소금을 둘러싼 전쟁은 많았다. 소금이 원인이 된 혁명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혁명이다. 13세기 말 프랑스 왕실에서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소금세를 만들었다. 악명 높은 ‘가벨(gabelle)’이라는 염세 제도다. 왕이 정한 가격대로 모든 남성, 여성, 8세 이상의 어린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소금을 사야 했다. 가벨이 가장 심했을 때는 소금 원가의 스무 배가 넘는 금액이 책정되었다. 더 큰 문제는 귀족에게는 소금세를 면제해 주고 일반 백성에게만 과도하게 부과했다는 것이다. 부당한 착취에 고통받던 농민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1789년 혁명으로 이어졌다.

 

히shutterstock_237233377.jpg

 

 

간디의 소금 행진
인도에서도 소금세 때문에 비폭력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인들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먹을 수 없었다. 영국에서 만든 소금만 먹어야 했고, 이에 대한 세금을 영국 정부에 납부해야 했다. 1930년 영국 정부에서 소금세를 두 배로 올리자 간디는 소금 행진으로 대항했다. 그해 3월 12일, 간디는 수천 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인도의 서쪽 해안까지 걸어서 행진했다. 3주 동안 400킬로미터를 걸어 바다에 도착한 간디는 모래밭에서 소금 한 줌을 들어 올렸다. 소금 행진은 인도 자국민들의 각성은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소금 행진 1년 뒤 소금세는 폐지됐다.
20세기 전까지도 소금을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가 있었다.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고, 왕조가 바뀌고, 국가 간 약탈과 착취가 일어나는 등 세계의 역사를 계속 쥐락펴락했다.

 

히shutterstock_588322316.jpg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