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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사는 법

속도에 휩쓸리지 않았지만 마음을 거스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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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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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흐르는 강물만큼 느림에 어울리는 소재가 있을까. 전북 임실군 장산리 진메마을. 강을 품고 있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이 강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섬진강 시인 때문. 마을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이가 김용택 시인이다.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 단촐하게 세워진 시비(詩碑). ‘농부와 시인’이라는 시다. 찬찬히 읽어본다.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써온 시인을 만났다.


writer 김남희 / photographer 정우철


귀밑머리 식혀주는 살가운 시골 바람 맞으며 시골 풀밭 길을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니 어느새 시인의 생가 앞이다. 대문도 없다. 그냥 발을 들여놓으면 바로 집 마당이다. 오래된 시골 기와집은 소박했고 돌담에 핀 능소화는 정겨웠다. 한때 시인의 서재였고 지금은 문학관이 된 시인의 생가. ‘회문재(글이 돌아오는 집)’란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노라면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가 적당히 아련하게 보인다. 생가 바로 뒤편으로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층 살림집과 서재로 사용하는 별채가 있다.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자그마한 연못도 있다. 시인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한 후 8년쯤 전주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러다 3년 전쯤 생가 주변에 살림집과 서재를 짓고 귀향했다. 요즘 시인은 오롯이 자연의 풍요로움에 기대어 산다. 자연 속에서 글을 쓰고 읽고, 글을 통해 자연을 품고, 세상과 교감한다. 유유자적하게 스스로 만족하며 견고하고 단정하게 살고 있다.

 

Q 2016년 <울고 들어온 너에게>란 시집을 내셨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A 꾸준히 시를 쓰고 있고 또 시도 많이 읽고 있어요. 동네 어르신들, 귀촌한 분들과 시 공부도 하고 강연도 자주 다닙니다. 집에 있는 날에는 보통 저녁 8시에 잠들어 새벽 2시 반쯤 일어나요. 새벽녘에 일어나 마당에 나오면 별이 떠 있어요. 서서 가만히 별도 보고, 달도 보는데 요즘은 귀뚜라미 소리가 그렇게 좋아요. 새벽의 자연을 느끼면서 서재로 갑니다.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해외 축구스타들의 동영상을 찾아봅니다. 골 넣는 장면만 봐요.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데 너무 흥미진진해요. 그런 다음 여러 신문 기사들을 꼼꼼히 검색해서 읽습니다. 일기도 씁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적는 게 아니라 어제를 기억해서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기록합니다. 그동안 써놓았던 시를 정리하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침 7시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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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산책하러 나갑니다. 1시간 반 정도 걸으며 자연의 풍경을 찍어요. 나무도 찍고, 돌도 찍고, 강물, 물고기, 새, 꽃 등을 보이는 대로 찍어요. 집에 오면 아내가 아침을 차려줍니다. 오전 시간은 주로 영화를 보고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집안일을 해요. 청소도 하고, 밥도 짓고, 빨래도 합니다. (웃음) 요새 아내가 너무 자주 시켜요. 어떤 날은 12가지나 되더군요.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이러다 싸우고 말지.’ (웃음) 집안일을 하다보면 늦은 오후가 돼요. 가족과 동네 산책에 나섭니다. 그러다 저녁 8시면 잡니다. 일상을 열심히 살고 있어요. 일상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질적입니다. 일상을 존중하며 살다 보니 바쁩니다. 전혀 고루하지 않아요.

 

 

Q 시골, 자연, 시 등 일상이 모두 느림과 어울립니다.


A 심심할 줄 아는 사람이 잘 사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심심함을 잃고 살아요. 한순간도 심심하면 못 견디죠. 저는 심심한 일상을 살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버린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심심함 속에 있다보면 주변이 보입니다. 내 주변은 온통 산골의 자연입니다. 자연의 소리를 온전히 듣고 자연의 변화를 세밀하게 봅니다. 귀뚜라미 소리도 귀뚜라미 소리로만 들려요. 다른 소리가 전혀 개입되지 않아요. 어떤 잡음도 없고 질문이 없는 소리, 순전한 그 음만 들을 수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오동나무 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아세요? 그 소리는 잎의 크기만큼 들립니다. 넓은 잎에는 넓은 빗소리, 좁은 잎에는 좁은 빗소리가 들리죠. 여기서만 들을 수 있는, 읽을 수 있는 자연의 언어가 너무 풍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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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심심한 일상이 지루하지는 않습니까?


A 심심하다고, 느리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평생 내 고향에서만 살았어요. 같은 집, 같은 길, 같은 자연 속에서만 살았어요. 심지어 선생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그것도 교직 생활 38년 중 26년을 2학년 담임만 했죠. 누군가 답답하지 않냐고 그래요. 답답했다면 평생을 어떻게 한 곳에서만 살았겠어요. 

 

 

Q 자족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A 살면서 ‘무엇을 해봐야겠다, 누구처럼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시인이 되려고 한 적도 없고. 학창시절 공부도 못했고 최종학력도 고졸이죠. 어쩌다 스물두 살 때 초등학교 선생이 됐고 그때 처음 책이라는 세상을 알게 됐어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어렸을 적에 어떻게 책을 접했겠어요. 월부 책장사에게 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었어요. 그렇게 뒤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다 보니 생각이 많아져서 글을 썼어요. 그 글이 바로 시였고, 그렇게 시인이 됐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면서 살았을 뿐이죠. 선생을 할 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았고, 시인으로 살 땐 글을 쓰는 일이 좋았어요.

 

 

Q 속도를 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A 지나간 일, 다가올 일은 다 쓸데없는 것이에요.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살아 있는 이 삶 자체를 좋아하세요. 저는 살아오면서 지금의 나를 한 번도 싫어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죠. 그 누구도 절망, 고통, 좌절, 괴로움, 아픔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은 없어요. 그것을 피해서 사는 사람도 없어요. 그럼에도 그것들을 견디고 이겨내는 지금이 좋고 행복합니다. 나는 특별한 욕심을 내본 적이 없어요. 뭔가를 욕심내면 고민하게 되고 고민이 많아지면 삶이 불안해져요. 나는 나를 잘 알아요. 내 한계, 내 분수를 알죠. 천성적으로 수직을 싫어해서 누구 위, 누구 아래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생각보다 잘 산 사람이 바로 나예요. 평생 속도에 휩쓸리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한 마음을 거스르지도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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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빠른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하시겠어요?


A 공부해야 해요. 우리가 가보지 않은 세상, 모르는 세계가 얼마나 많아요. 가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 그것이 공부의 시작입니다. 예를 들어 시인이란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해야 하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잘 안 해요. 제대로 공부를 안 하니 계속 머물러 있는 겁니다. 나는 끊임없이, 열심히 책을 읽었어요. 책을 열심히 읽었더니 생각지도 못하게 시인이 된 거예요. 부지런히 공부하면 자기 삶이 가꿔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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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은 1982년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연작 시를 발표하면서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약 40여 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2008년 정년퇴임했다. 1986년 김수영문학상, 1997년 소월시문학상, 2012년 윤동주문학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시어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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