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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ESSAY 저녁이 있는 삶이나 여가 생활을 통해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면 삶은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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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워라밸(Work-Life-Balance) ‘저녁이 있는 삶’을 가질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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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철도 그만큼 늦게 드는 거야.” 춘희(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주인공)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크게 공감한다. 수명이 늘었다는 말은 삶의 질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의미일 터. 시나브로 ‘고단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열심히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라는 질문을 자꾸만 하게 만든다.

 
글 정영아(기획 노동자)


세대 차이
주말마다 남편이 일하는 자전거 매장 일을 돕는다. 사장님을 비롯해 정비와 조립을 하는 메커닉까지 평균 연령이 예순 언저리다 보니 이제 막 불혹에 접어든 우리 부부는 그분들에게 애기 취급을 받는다. 덕분에 귀여움도 많이 받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세대 차이를 느낄 때도 종종 있다. 언젠가 상무님이 화두를 하나 던졌는데, 청년들의 자살률이었다. 상무님은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풍요롭게 살아서 끈기가 없다”며 안타까워하셨다. 다른 분들 역시 상무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 있던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괜히 끼어들면 대꾸가 될 수도 있고, 그분들이 살아온 삶을 온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상무님처럼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 삶은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것이었고, 그것이 곧 행복의 기준이었을 것이다. 먹을 게 없으니 학교에서 주는 미군 구호물자인 빵 하나가 소중했고, 그걸 몰래 챙기는 선생님이 얄미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조금 윗세대인 우리 어머니도 산후에 힘들게 드셨던 보리밥이 지겨워 지금도 보리밥만 보면 고개를 돌린다. 우리 또래의 부모, 삼촌, 고모, 이모들은 나보다는 가족과 나라를 위해 고단함을 꾸역꾸역 참으며 ‘열심히’ 일했다. 아니 어쩌면 ‘일만’ 했을지도 모른다.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X세대부터 지금의 2030세대를 지칭하는 욜로족까지, 시대 트렌드를 대변하는 여러 세대가 있다. 그중 X세대는 한국에서 가장 거침없는 세대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군부정권 경험을 하긴 했지만 독재도, 보릿고개도 모르고 살았다. 대학 시절에는 ‘알바’한 돈을 모아 해외 배낭여행도 어렵지 않게 다녀왔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지향하고, 문화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에 높은 가치를 둔다. 성향을 한 단어로 규정한다면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을 향해 외쳤던 ‘카르페 디엠’은 X세대를 시작으로 젊은 세대가 꿈꾸는 삶의 가치가 되었다. 

 

 

 

행복의 기준
올 초 국회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익히 알려졌듯 우리나라의 노동 강도는 어마무시하다. 2016년 OECD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아는 전후세대, 즉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가족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한 기성세대에게는 익숙한 환경이었지만,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산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무엇보다 어렵게 취직해서 열심히 일해도 나 혼자 먹고살기도 팍팍한 삶을 버텨야 하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삼포세대’에게는 더욱 힘든 노동환경이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You Only Live Once)’라고 외치며 탄생한 욜로족(YOLO)부터 ‘워라밸((Work-Life-Balance)’,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유일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어차피 많은 것을 가질 수 없다면 소소하지만 나를 위한 작은 행복을 가지고 싶어진 게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에 묻혀 살기보다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높은 연봉을 받거나, 야근을 해서 수당을 챙기는 것보다는 ‘칼퇴’가 가능한 회사에 취직해 나만의 저녁을 가질 수 있는 삶. 돈보다는 ‘내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삶에 대한 동경, ‘워라밸’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산 기성세대 중에는 “그렇게 그릇이 작아서 성공하겠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또 “요즘 젊은 애들은 자기밖에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젊은 세대가 풍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기저에는 부모세대의 희생이 자리한다. 나보다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거리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기에 군부도 물러났다. 다만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행복의 가치도 더불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고, 그로 인해 얻은 풍요로움이 행복의 기준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더불어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에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서른일곱이 되던 해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정확히는 15년 남짓 매일 해오던 ‘직딩’에서 졸업했다. 남편의 동의 덕분에 홀로 ‘한 달 스페인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더 이상 조직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컸고,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찍히던 월급이 더 이상은 들어오지 않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하지만 한 달 여행을 마친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결이 맞은 사람들과 함께 자원봉사 활동을 했고,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했던 다양한 문화강좌도 신청했고, 남편과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들며 소소한 기쁨도 즐겼다. 그렇게 정확히 6개월의 시간을 보냈고, 프리랜서라는 명함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전보다 소득은 줄었지만 돈은 있는 만큼만 쓰면 된다.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시댁과 친정도 이전보다 더 챙긴다. 무엇보다 삼냥이(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직장생활 때는 꾸역꾸역 하던 일의 소중함도 느끼고 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마흔을 앞두고 비로소 나만의 워라밸을 맞췄다. 마흔을 갓 넘긴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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