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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ESSAY 명절 연휴에는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고,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풍요로운 시간을 보낸다. 이럴 때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넉넉하게 음식을 장만해 여럿이 나눠 먹는다면 이 또한 명절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특히 명절에는 으레 한우요리가 빠지지 않는데, 이때만큼은 구워먹는 것보다 갖은 양념이 쏙쏙 밴 한우요리를 준비해보자. 정성이 가득한 한우요리로 차린 훌륭한 식탁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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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만남

한복연구가 박술녀 짓다. 입다.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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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선생님 사진 3.jpg

 

무려 33년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3년이 더 흐르는 동안 박술녀는 오로지 한복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비단의 은은한 광택과 고운 결을 마주할 때나 정성스러운 바느질로 한복이 완성될 때면 여전히 설렌다는 그녀다. 어느 순간부터 한복은 일 년에 한 번도 입기 어려울 만큼 특별한 옷이 되었지만, 그 가치는 변함이 없기에 박술녀는 행복한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한복을 짓고 있다.


writer 박영화 / offer of picture 박술녀한복



짓다, 낮도 밤도 없이 한복을 짓다 
약속을 잡기 위해 박술녀가 운영 중인 한복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놀랍게도 ‘박술녀’였다. 인터뷰 중에도 걸려오는 전화를 모두 직접 받느라 몹시 분주했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일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기는 건 물론 손님을 응대하는 것까지 모든 부분에 소홀함이 없었다. 심지어 취재팀을 위한 다과를 챙기는 것조차. “뭐든 제가 직접하는 편이에요. 시장에 가서 옷감은 물론 단추 하나까지 직접 보고 선택하죠. 전화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한복집에 전화하시는 분들은 저를 찾는 거니깐 당연히 제가 받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요. 패션쇼 무대에 설 연예인 섭외도 제가 하고 있어요. 누군가 대신해주는 건 재미없잖아요.”
꼼꼼하고 섬세한 그녀의 성품이 고스란히 한복에 녹아들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한복이 완성되고, 박술녀한복은 누구나 입고 싶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복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낮도 밤도 없이 바느질에 빠져 살아온 덕분에 ‘한복을 참 잘 만드는 집’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박술녀. 그녀가 한복을 짓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3년의 세월이 흘렀다. 

 

32136. 2015년 IDB(미주개발은행)-IIC( 미주투자공사)연차총회 한복패션쇼.jpg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한복이 예뻐서 늘 만져보고 입어보곤 했어요.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워 헌 옷을 깁거나 간단한 옷을 만들며 밤을 새우기도 했죠. 한복집 앞을 지날 때면 한참을 서성거렸는데 그때마다 생각했어요. ‘나는 어떤 한복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요.”
스물네 살이었던 박술녀는 서울로 올라와 한복 만드는 일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녹록지 않았던 서울살이였지만, 다행히 한복 디자이너 1세대인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의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다. 다소 늦은 출발이었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했다. 남들이 쉴 때 안 쉬고, 잘 때 안 자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입다, 미디어·패션쇼 속 박술녀한복
당시 문하생 중 가장 실력이 좋았던 박술녀는 5년 만에 서울 군자동에 33m2(10평) 남짓한 한복집을 내면서 독립했다. “제 이름 석 자를 걸고 만드는 한복이기에 한 땀, 한 땀 더 정성을 다했어요. 잠을 푹 자본 적이 없고, 일요일에도 쉬지 않았죠. 가족과 식사를 함께 하거나 여행을 가는 등의 평범한 일상도 포기할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모든 생활을 한복 만드는 일에만 집중한 그녀는 1997년 청담동으로 한복집을 옮긴 뒤 2005년 규모를 키워 사옥을 마련했다. 단골이 많아지면서 방송사의 한복 협찬 요청이 쇄도했다. TV를 통해 우리 한복을 알릴 기회라고 생각한 그녀는 MBC <내딸, 금사월>, KBS <아버지가 이상해> 등 드라마와 영화,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협찬해 한복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우리 전통 의복인 한복을 알리기 위해 해외 스타들에게 손수 지어 선물하기도 했다. 또한 박술녀는 매년 스타들과 함께 패션쇼를 선보이며 한복의 미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32139. 아리랑tv-조선시대 선비들의일상(가구박물관).jpg


“패션쇼는 젊은 사람들에게 한복을 알릴 기회죠. 예쁘게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줘 한복을 주목하게 하고, 얼마나 우리 옷이 아름다운지를 알리는 거죠.”
2001년 대한민국 한복대전 한복 패션쇼, 2002년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패션쇼, 2006년 데뷔 20주년 기념 패션쇼, 2010년 한국 아랍에미리트연합 수교 20주년 기념 패션쇼, 2013년 세계여행관광협회 패션쇼 등 그녀가 참여한 패션쇼는 손에 다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한복 부분의 수상을 독차지하고 있다.

 

 

 

웃다, 한복과 함께한 행복한 33년 
“한복은 우리 조상의 얼이 담긴 우리나라의 전통 의상이죠. 기성복처럼 재봉틀로 박아 단기간에 대량 생산하는 옷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장인의 정성과 열정이 오롯이 깃든 만큼 수공으로 만들어야 멋이 나는 진정한 명품 의상입니다.”한복의 매력에 대해서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입는 옷”이라고 말하는 박술녀. 입는 이를 생각하며 정성스레 짓고, 또 정성스레 입어야 하는 옷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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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엔디워홀  수제자   데이비드 라샤펠 과 함께.jpg


 “우리나라는 명절에 조차 한복을 입는 사람이 줄어들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옛날처럼 매일 한복을 입자는 게 아니에요. 명절이나 제사 때만큼은 격식 있게 우리 옷을 입자는 거죠. 한복은 우리 옷이니까 한국인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복’이라는 이유로 외로운 길이었지만, 그것이 또 ‘한복’이었기에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는 박술녀. 직접 고른 고운 천과 촘촘한 바느질로 10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한복을 짓기 위해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늘을 잡고 있다. 
“지금 저는 산의 정상에 오른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다치지 않고 정상에서 잘 내려올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욕심을 내서 일하기보다는 33년의 세월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사진 등 기록을 정리 중인데요, 사진을 보니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싶더라고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리 한복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321탈렌트 황정음 씨.jpg

 

 


수상내역
2016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 한복명인 부문
2014    대한민국한류대상 한복 부문
2014    대한민국 명가명품대상 한복 부문 대상
2012    여성소비자가 뽑은 참 좋은 브랜드 대상 특별상
2008    대한민국 혁신기업 대상
2008    이노베이션 기업 브랜드 한복연구가 부문 대상
2005    제5회 여성소비자가 뽑은 최고명품대상 / 한복 부문 특별상
2004    럭셔리 웨딩브랜드 대상 한복 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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