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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ESSAY ‘만들이’란 소와 함께한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 중 하나입니다.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던 풍속이지요. 국민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한우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만들이! <만들이>는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우리 한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국내 유일의 한우문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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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맛따라

겨울 볕 그러모아 소담스레 담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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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

일상이라는 형태로 삶을 점령한 고단함은 일상이었으면 하는 어느 풍경 앞에서 설레게 마련이다. 사람 살지도 않을 건물을 하늘까지 빽빽이 지어대는 도시에서의 삶. 사람과 일에 치이는 건 간혹 그보다 빡빡하다.

 

나를 전주로 이끌었던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눈 내려올 길을 고스란히 여백에 내어주는 낮은 마을의 풍경은 신선했다. 기와에 쌓인 눈은 양털 이불처럼 날렵하게 성겨, 쌓였다기보다 감싸고 있다 해야 옳았다. 한옥 온돌 위에 지글지글 몸을 녹여가며 맞는 겨울은 되레 따스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조희진 / 사진 정우철

 

전주행에 나선 아침에도 서울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겹쳐 입은 옷이 둘러멘 배낭보다 무거웠다. 버스를 타고 전주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한옥마을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비는 5천 원 정도였나. “끝에서 끝을 가도 택시비 부담이 없어.” 전주가 고향이라고 했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끝에서 끝으로 걸어보아도 좋지 않을까. 낮은 건물들이 맞대고 가르는 하늘색이 맑았다.

 

사실 전주는 작은 동네가 아니다. 오랫동안 나라의 큰 고을로 존재해왔거니와 현대에 들어서도 전북의 중심 도시 기능을 담당한다. 하지만 쉽사리 도시라고 부르기가 내키지 않는다. 중앙에 아기자기하게 밀집한 700여 채의 한옥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고 풍남문, 경기전 등 전통 건축물들이 사이사이 자리해 예스러움의 무게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야트막한 산들은 전주 특유의 온화한 기운을 감싸고 있다. 현대 도시가 가진 삭막한 이미지를 전주에 가져다 붙이기가 어렵다.

 

한옥마을에서부터는 걷는 데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자주 멈추어 서고, 앉아 쉬고, 먹고 마시기도 하면서. 그렇게 전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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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길목에 우뚝 선 풍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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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문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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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에서 바라본 전동성당>

 

 

 

정지된 사물과 걷는 이의 대화

전주한옥마을

처음 둘러본 곳은 풍남문이다. 임진왜란 때 부서져 영조 때 재건되었고 갑오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이 승리를 거둔 역사 현장이다. 풍남문 주변을 빙 돌고 광장 앞 거리를 지나니 경기전과 전동성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역사 명소와 주변에서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을 끊임없이 관조하는 시선들이 겹쳐 과거는 느린 영상처럼 현재로 이어지고 있었다. 곳곳에는 한복 입은 사람들로 넘쳤다. 그처럼 많은 수는 전주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걷는 이들의 한복 자락이 겨울 볕에 부딪혀 거리는 느긋한 생기로 가득했다.

 

경기전 안은 그보다 고요한 분위기였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내부에 있는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곳이다. 어진을 살피고 전주사고로 발길을 돌리니 대나무숲이 길을 내며 바람에 서걱거렸다. 공간에 담긴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나무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담장과 건물 사이를 따라 나와 전동성당 앞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다음 일정에 대한 걱정 없이 더 천천히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마을의 돌길은 다시 호기심을 일으켰다. 전주한옥마을은 길에서 길마다 둘러볼 곳이 넘친다. 지도 없이 걷다가 마음에 들면 걸음을 멈추면 된다. 다시 나선 길에는 수령 600년이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지켜서고 있었다.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았지만 아득한 시간 살아남은 나무의 생은 지나는 이의 발길을 저절로 멈춘다.

 

한옥마을의 매력은 예스러움을 지켜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박물관과 체험관이 방문자들에게 경험과 감상을 제공한다. 태조로를 가로질러 골목길로 들어서니 최명희문학관이 나왔다. 전시된 문장을 따라 《혼불》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방안에 웅크려 읽던 때와 다른 감상이 들었다. 한편에는 방문객들이 직접 글을 써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연인들은 이곳에서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그 외 한옥체험관과 부채문화관, 전통주문화관 등 다양한 공간은 전주한옥마을의 존재를 더욱 가치 있게 한다. 기억에 남는 곳은 여명카메라박물관이다. 한옥마을의 모든 장소를 둘러볼 수 없어 아쉬운 와중에도 이곳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냈다. 공간은 아담한 편이다. 대강 둘러보자면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1840년 생산된 세계 최초 금속 카메라를 비롯해 목제 카메라, Leica 시리즈 등 아름다운 디자인의 다양한 클래식 카메라들이 전시되어 카메라의 발전과 역사를 한자리에서 보는 기쁨이 만만치 않다. 전시된 대부분 카메라는 실제 작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10%는 필름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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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사고로 가는 대나무숲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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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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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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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관 안에 전시된 《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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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문학관 앞을 지켜선 돌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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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명물 수제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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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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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기념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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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600년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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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카메라박물관에 전시된 LP장과 티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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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카메라가 그려진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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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한 디자인의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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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문화관으로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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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어귀에서 만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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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전경>

 

 

온전한 한 그릇

전주비빔밥

흔히 ‘전주 여행은 허리띠를 풀고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맛있는 먹거리가 많다는 소리다. 예부터 전주 양반들은 정성 유별난 음식을 좋아하고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그 탓에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음식 창의의 도시(City of gastronomy)’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특히 전주비빔밥은 평양냉면, 개성탕반과 함께 조선 3대 음식으로 꼽히면서 그중 으뜸으로 인정받는다. 일단 조리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다. 양지를 끓여 식힌 물에 ‘전주 10미’의 하나로 꼽히는 질 좋은 콩나물을 섞어 밥을 짓는다. 황포묵과 소고기 육회, 각종 나물을 얹어 놋그릇에 담아내면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휘휘 비벼 먹는다.

 

미식가들은 입을 모아 전주비빔밥을 찬양한다. 어떤 이에게는 매일 먹는 비빔밥과 비교해 특별할 것 없는 맛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 지인들의 극찬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미식가적 재능이 전주에 와서 깨어난 탓인지, 전주가 만인을 미식가로 만드는 탓인지 여행 중 만난 전주비빔밥 한 그릇은 여느 한 상보다 온전했다. 고소한 한우 육회가 씹히면서 황포묵이 찰랑찰랑 부서지는 맛이 특히 좋았다. 전주비빔밥에서 맛본 황포묵과 육회의 조화가 마음에 든다면 황포묵육회를 따로 즐기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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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육회와 황포묵의 환상 조화, 전주비빔밥>

 

 

낮은 산에서 바라보는 낮은 마을

동고사 일몰

한옥마을을 쏘다니며 먹고 걷기를 반복하다 보니 오후 5시가 금세 지났다. 해지는 풍경만은 놓치고 싶지 않아 나머지 일정은 다음 날로 미루기로 했다. 마을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승암산 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낮게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르니 작은 절이 나왔다. 그리 높지 않은 산기슭 절에서도 전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돌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해지기를 기다렸다. 저녁 종을 울리러 나온 스님 한 분이 여기 뭐 볼 게 있느냐며 핀잔 섞인 말을 건넸다. 캄캄해지면 위험하니 조심히 내려가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스님에게는 익숙할 테지만 침잠하는 종소리를 들으며 내려다보는 전주는 아름다웠다. 산기슭을 돌아 다시 한옥마을로 내려오는 길. 실처럼 가느다란 초승달이 마을의 불빛을 이기며 하늘에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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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암산에서 바라본 전주 전경>

 

 

느리게 걷는 아침 산책

한벽당과 둘레길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이튿날 일정을 시작했다. 하루를 보내고 맞는 전주의 아침은 한결 여유로웠다. 아침 햇살에 비비적거리다 전주천으로 난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한옥마을을 벗어나 대로를 따라가다 보니 한벽당이 보였다. 승암산 기슭의 절벽을 깎아 세운 이 누각은 조선 태종 4년에 건국 공신 최담이 별장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바위에 부딪혀 흰 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는 뜻에서 ‘한벽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건축물보다 아름다운 것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다. 전주천 가에 우거진 갈대밭이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모습이 변했겠지만, 시인과 묵객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고 나그네들이 쉬어갔다는 누각의 명성을 짐작할 만했다. 빛바랜 풀숲 사이,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은 길이 되어 있었다. 이끌리듯 갈대밭 사잇길로 걸어 들어갔다.

 

둘레길을 천천히 거닐고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데 사진을 담던 포토그래퍼가 전주향교가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아까도 지났던 길인데 목적지만 생각하다 보니 미처 보지 못했던 거였다.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을 통해 사라져버린 느림의 즐거움에 대해 말했다. ‘우리 세계에서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 따분해 하며 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결여된 움직임은 자리에 멈춰 선 것들과의 인연에서 되찾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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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에서 내려다본 전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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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을 바라보는 한벽당, 전주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 거리

자만벽화마을과 서학동예술마을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대로를 되돌아 자만벽화마을에 들렀다. 이곳은 원래 한국전쟁 당시 모여든 피난민들이 살았던 곳이다. 가파른 골목 사이사이 담장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다. 키치하고 독특한 콘셉트의 찻집과 게스트하우스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다. 다만 사람 사는 동네에서 사진을 이렇게 찍어도 되나, 조금 조심스럽다.

 

오며 가며 만나는 전주 사람들이 유독 친절하기는 했다. 잠시라도 헤맬라치면 지나는 이가 길을 알려주었다. 때로는 그도 잘 모르는 길 같은데 성실히도 알려준다.

 

벽화마을을 둘러보고는 남천교를 건너 서학동예술마을로 향했다. 고백하자면 꽤 이른 시간이라 둘러볼 곳이 마땅치 않았다. 문 닫힌 갤러리와 공방들을 지나치며 아쉬워하다 찾은 곳은 서학동사진관이다. 서학동사진관은 사진가 김지연 씨가 서학동의 한옥을 개축해 꾸민 갤러리다.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마침 그가 김지연 작가였다. 근처 가볼 만한 곳을 묻자 손수 약도를 그려주며 일일이 소개를 마다치 않는다.

 

서부 신시가지 개발과 도청 이전 등으로 급속한 퇴락을 맞은 서학동에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 살기 시작한 건 2010년 무렵부터다. 공방과 갤러리가 하나둘 생겨나고 마을 재건을 위해 주민들이 힘을 모으면서 예술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재활용병을 활용한 텃밭과 담장을 물들인 벽화가 마을을 아끼는 이들의 흔적을 전하고 있었다.

 

자만벽화마을과 서학동예술마을을 지나면서 든 생각은 전주를 전주답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사람이라는 거다. 사실 전주를 대표하는 한옥마을의 역사는 100년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성곽을 헐고 도로를 트면서 상권을 점령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시민들이 한옥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곳이다. 문화를 쌓아가는 것 역시 사람들인 것. 이런 움직임은 한옥마을 안에서만 아니라 밖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전주를 다 담기에 1박 2일 일정은 턱없이 부족했다. 일정 탓에 지나친 공간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더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하다. 멀지 않은 시기에 다시 한번 전주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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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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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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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동사진관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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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동예술마을의 어느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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