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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ESSAY ‘만들이’란 소와 함께한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 중 하나입니다.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던 풍속이지요. 국민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한우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만들이! <만들이>는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우리 한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국내 유일의 한우문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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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찰칵’ 맛으로 담는 기억의 스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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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정석 PD

 

# 1 아버지가 누런 월급봉투를 받으시는 날에는 어김없이 신촌 또는 을지로의 어느 식당에 가족이 모여앉아 소고기구이를 먹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라 달리 고기 맛을 구별해내는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고기가 소고기란 것을 알았을 뿐이다. 아버지가 누런 봉투에서 돈을 꺼내 값을 치르고 나면 남은 월급이 든 봉투는 어머니에게 건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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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맛을 모르는 어린 나에게도 한 달에 한 번 맛보는 고기 맛은 특별했다. 그렇게 화려한 외식을 하고 나면 나는 한동안 반찬 투정을 했다. 그럼 어머니는 소고기 로스를 해주시곤 했다. 은박지를 깐 프라이팬에 냉동한 소고기를 구워주시는 거였다. 나는 다시 한번 식당의 고기가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신촌과 을지로에는 부모님과 함께 고기를 먹었던 식당이 지금도 남아 영업 중이다. 자라고 한참 나중에야 그날의 외식 메뉴가 한우였다는 걸 알았다.

 

 

# 2 그렇게 어린 날 맛에 대한 기억을 짚어보자니 떠오르는 장면이 또 있다. 심심하지만 제법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아, 나는 곧잘 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 따라나섰다.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음식을 앞에 두고 음식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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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곱창집에 갔을 때였다. 어른들은 익어가는 소 곱창을 앞에 두고 어느 집이 맛있고 어느 집은 가족하고 가서 먹기에 좋다고 말하고 음식 이름이 왜 그 이름인지 한참 동안 ‘썰’을 풀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지 않고 이야기만 나누는 모습에 나는 어른들이 ‘음식 투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라도 소 곱창을 빨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나게 먹고 있는데 아버지의 젓가락이 음식을 집는 내 젓가락을 ‘툭’ 쳤다.

 

아버지 친구는 괜찮다고 웃으셨지만 아버지는 자꾸 천천히 먹으라며 내 젓가락을 ‘툭툭’ 치셨다. 한참 후 이유를 알게 되고 가끔 철없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된다. 친구가 계산해야 하는 자리에도 굴하지 않는 내 솔직한 먹성에 아버지는 편치 않은 마음이셨을 거다.

 

 

# 3 이제는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다니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스스로 음식값을 내는 나이가 되었다. 한번은 홍성에 갈 일이 있었다. 정확히는 <에드워드 권의 Yes, Chef> 촬영을 할 때다. 촬영과 촬영 사이, 어느 중간쯤. 한 농민께서 방금 잡은 소고기의 채끝 한 점을 칼로 잘라 굵은 소금에 찍어, 내 입에 넣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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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구워지지 않은 채끝을 씹는 기분이란. 사실 이 원고를 의뢰받는 순간, 그 맛을 떠올렸다. 홍성에서 먹었던 한우 맛은 글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차갑지 않은, 차라리 뜨겁다고 말할 수 있는 채끝 한 점. 씹으면 씹을수록 다른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맛있다고 덜컥 말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오묘하고 또 모호한 맛. ‘아~ 음식 프로그램하기를 잘했다’라는 아주 원초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금껏 먹어본 소고기와 촬영장에서 먹은 소고기의 맛이 왜 다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 고민을 판단할 생각 거리가 워낙 부족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한우에 대해 별다른 견해와 이해 없이 한우에 관한 내용을 촬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와 책 몇 권을 샀다. 책을 읽다 보니 해결되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촬영하면서 알게 된 요리사들에게 재료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음식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 후 몇 개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더 만들었다. 잘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다. 하지만 식재료를 이해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식재료를 잘 이해한다고 시청률이 더 잘 나오지는 않지만 내가 찍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4 마장동에 ‘소 까는 작업’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소를 부위별로 나누는 일이다. 지방을 걷어내고, 뼈를 바르고 부위별로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본다. 어디까지가 등심이고 어디까지가 살치살인지 그 경계는 모호하다. 등심에 덧살을 더 붙이는 것이 좋다, 아니다를 놓고 고기를 자르는 사람마다 약간의 견해차가 있다.

 

한우는 더 그렇다. 부위별로 잘려 수입되는 수입고기는 논란의 여지가 적지만 손으로 작업하는 한우는 모호한 부위들이 많다. 그래서 더 맛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벽녘 작업을 마치고 들어가는 ‘칼잡이’들과 조주를 마시다가 문득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디까지가 행복이고 어디까지가 불행인가’라고 구분 짓는 일은 ‘어디가 채끝이고 어디가 아랫등심인가’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건 아닐까? 사실 그건 칼 든 사람의 생각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는데 말이다.

 

이제 40대를 넘긴 나이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내 모습에 문득 허탈할 때가 있다. 이번 주말에는 홍성에 내려가 봐야겠다. 막 잡은 채끝에 굵은 소금을 찍어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준 첫 자극과 음식 프로그램을 잘해보겠다고 생각했던 각오는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정석 PD는 <순위 정하는 여자>, <에드워드 권의 Yes Chef>, <Master Chef Korea 1~3>, <Tasty Road>, <한식대첩 3> 등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연출했다.

 

TV 시청자가 늙어가고 본인도 늙어가는 것이 슬퍼서 최근 모바일 매체 ‘make us’로 소속을 옮겼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Dingo Food’를 검색하면 하정석 PD가 최근 제작한 영상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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