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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ESSAY ‘만들이’란 소와 함께한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 중 하나입니다.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던 풍속이지요. 국민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한우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만들이! <만들이>는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우리 한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국내 유일의 한우문화 매거진입니다.
사방에 일렁이는 푸른 물결에 눈도 마음도 마냥 싱그러워지는 계절입니다. 향긋한 봄날의 초록, 그 맛과 멋을 한우와 함께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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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따라 길 따라

그 열매 익히는 볕과 강물 그 강물을 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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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은 볕이 참 좋은 고장이다.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남해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꽃 축제도 제일 먼저 열린다. 하얀 매화가 봄을 수놓은 섬진강변에서 말이다. 축제가 끝나고 봄바람이 제법 더워지면 사람들은 다른 꽃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하얀 매화에 이어 노오란 유채꽃이 광양을 물들이고 섬진강은 좀 더 온화해진 표정으로 변함없이 흘러 망덕포구에서 남해로 흘러든다. 꽃이 진 매실나무에선 매실이 보석처럼 맺힌다.5월의 광양도 그렇다.


섬진강변에 하얀 꽃구름이 일자 관광객들이 그야말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꽃을 찍는 사람, 꽃 속 자신을찍는 사람, 꽃 찍는 사람을 찍는 사람…. 시간이 흘렀고 봄비가 몇 차례 내렸다. 꽃이 죄다 졌고 사람들도더 이상 광양으로 몰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꽃 진 자리에는 잎이 돋았고, 그 옆으로 초록의 매실이 목걸이의 보석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꽃이 사라진 광양에서 묵었던 한적과 여유의 1박 2일 여행기다.

 

 

그래도 봄이라 꽃이 그립다면
광양 서천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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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서천 유채꽃. 광양 시가지를 흐르는 서천은 시민들의 휴식처다.

서천변에 차를 대고 산책하다 보면 소풍 나온 유치원 어린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채꽃은 1km 넘게 이어져 유채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떠나는 날, 하늘은 무척이나 푸르렀다. 마치 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섬진강이 보고 싶었다. 강줄기가 지리산 노고단 남쪽을 지날 때만 해도 강 건너편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19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로가 아직은 기찻길처럼 사이좋게 달리는 구간. 하지만 매화유명한 다압을 지나고 그 끝에 가까워지면 강폭이 넓어져 강 건너는 아득해지고 모양새는 바다를 닮아간다.
남해 바다에 안기는 섬진강이 보고 싶었던 거다. 섬진강가의 흙과 그 흙을 매만지는 노동으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사람들은 밀물처럼 밀려와 꽃만 보고 썰물처럼 빠지지만, 매실을 가꾸는 이들은 나그네들 빠져나간 곳에서 자신의 일과를 묵묵히 치른다. 그 모습이 꽃가루 날릴 때나 비바람 몰아칠 때나 한결같이 흐르는 강을 닮았다. 그 곁에서 하루 이틀의 시간을 보내면 그 성실함을 조금 닮을 수 있을까.
광양의 하늘도 맑았고 볕은 좋았다. ‘빛 광(光)’에 ‘양지바를 양(陽)’을 쓰는 광양이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 볕 받아 서천변에는 유채꽃이 한창이다. 서천은 광양을 관통하는 작은 내다. 광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산 구 시가지 지역과 농어촌 지역이었다가 광양제철이 들어서면서 그 풍경이 바뀐 곳. 구 시가지 지역은 순천과 가까운 내면이고 후자는 섬진강 건너 하동과 가까운 외면이다. 이 두 지역을 가르는 건 백운산 줄기이고 백운산에 발원해 광양 내면을 꿰뚫고 흐르는 하천이 서천이다. 광양시민들은 서천변에서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며 소풍을 즐긴다. 꼬꼬마 유치원생들이 쉴 새 없이재잘거리면서 잔디밭에서 뛰어놀다가 도시락을 먹다가 친구와 놀다가 싸우다가를 반복한다.
물론 유채꽃이 서천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섬진강변에도, 외면의 새로운 도심이라 할 중마동에도 노란 물결이 바람 따라 일렁인다. 그 노란 물결 한가운데 가만히 서 있으면 열심히 꿀을 따려는 벌들이 윙윙거리는소리가 들린다.

 

 

점심엔 광양불고기, 
식후경으로는 망덕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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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에 왔으면 한 끼 정도는 광양불고기를 먹어야 맛이다. 서천변에 광양불고기 특화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특화거리 외에도 몇몇 맛집이 있다. 불은 세고 고기는 얇으니 타이밍이 생명이다.


 서천에서 유채꽃에 취했다가 정신을 차린 건 배가 고파서였다. 평양에는 냉면이 따라붙듯 광양에는 불고기가 따른다. 마침 광양불고기 특화거리가 서천변에 있다. 장안의 화제라는 <수요미식회>에서 추천한 맛집도 있다. 어느 집에서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광양불고기는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고기를 굽는 방식은 크게 둘 로 나뉜다. 생고기에 굵은 소금 뿌려 생생한 고기 맛을 즐기거나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요리로 즐기거나.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불고기일 텐데, 광양불고기는 조금 독특하다. 최소한의 양념만 가미해 고기 본연의맛을 잘 살렸다는 점이다. 그 두께를 아주 얇게 하여 그야말로 앞뒤로 ‘1도 화상’만 입으면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 다만 질 좋은 숯불과 열전도율이 좋은 황동 구이판 덕에 뒤집거나 먹는 타이밍을 놓치면 고기가 타서 제맛을 즐길 수 없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 선홍색으로 빛나는 숯은 광양의진산 백운산에서 가져온 것이다. 광양불고기를 먹으려면 과하지 않게 고기에 불맛을 입히는 실력이 제법 필요하다. 옆 테이블에서는 고기를 굽는 것이 영 손에 익지 않은 사내가 계속 고기를 태우면서 고기가 질기다는 평을 하고 있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뒤에는 망덕포구로 향했다. 귀에 익을 정도로 유명한 포구는 아니지만 섬진강이 남해로 흘러드는 포구다. 강 건너는 강의 동쪽이라는 뜻의 하동. 하지만 내내 작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쉽게 이를 수 있었던 하동은 망덕포구에 이르자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모든 강이 그렇지만 바다에 가까워진 강은 바다와 닮았다.
하늘이 흐리다. 저녁 이후에 구름이 많아지고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할 거란 예보를 듣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봄이라고 꽃만 보면 반 토막 여행일 테니 어둑한 포구에서 빗줄기를 맞이하면 그 또한 괜찮은 여행이다.

대한민국 어느 포구에서나 볼 수 있듯 망덕포구에는 횟집들이 늘어서 있다. 규모는 크지 않아서 밤거리가 휘황찬란하지 않고 고즈넉한 편이다. 연이어 서 있는 횟집들을 그냥 놓치면 안 된다. 낡은 간판들 사이로 눈에 도드라지지 않는 집이 한 채 보인다. 정병욱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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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가옥. 망덕포구 횟집 사이에 있다. 정병욱은 시인 윤동주의 후배이자 친구.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 집 마룻장 밑에 숨어 있다가 겨우 빛을 볼 수 있었다.


  윤동주는 1941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펴내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그럴 수가 없었다. 일제 말기에 한글로 시를 쓰는 건 그 자체로 불온한 것이었다. 발간이 문제가 아니라 압수당하면 어떤 탄압을 받게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윤동주는 열아홉 편의 시를 손수 베껴 써 세 권의 필사본을 만들었다. 한 권은 자신이 간직했고 다른 두 권은 은사인 이양하 선생과 친한 친구에게 맡겼다. 친구는 학도병에 강제 징집당하면서 어머니에게 필사본을 맡기며 소중한 것이니 잘 간수해달라 했고, 어머니는 마룻바닥을 뜯어 시집을 보관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동주의 친구는 일본의 감옥에서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소식을 듣고 시집을 발간했다. 정병욱 가옥은 동주의 후배이자 친구인 병욱의 흔적과 고뇌를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망덕포구에서 태인대교를 건너면 배알도다. 섬진강 자전거길의 종착지이자 남해로 접어들기 직전의 섬진강줄기를 잠시 둘로 나누는 섬이다. 예전엔 너른 모래사장에서 해수욕도 했다고 하고 지금도 지도에는 배알도 해수욕장이 표기되어 있다. 지금은 해수욕을 하기엔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비 오는 배알도 해수욕장엔 한사내가 낚싯대를 드리운 채 시간을 낚고 있었다.

 

 

꽃을 심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리라
청매실농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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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에 눈을 뜨니 빗줄기가 제법 가늘어졌다. 구름은 제법 가늘어 보였다. 오늘은 매화축제로 유명한 청매실농원을 둘러보리라. 매화축제든, 청매실농원이든 광양의 아이콘이 된 매실의 중심에는 홍쌍리 여사가 있다.
매화마을이 있는 곳은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다. 우리나라의 근현대 풍경을 잘 기록해 놓은 <한국의 발견>광양시 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고 또 제상에는 날로 올리는 밤을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따내는 곳이 바로 광양시다. 지금(아마도 1980년대일 것이다 -편집자 주)으로부터 한 육십 년 전에 이곳 다압면 도사리에 살았던김오천 씨가 일본에서 가져온 밤나무를 마을 뒷산에 심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돌산에서 자라난 이곳 밤이 유달리 달고 맛있음이 널리 알려지자 이곳 사람들은 다투어 밤나무를 심었다.’ 1979년을 기준으로 이 일대의 밤나무 군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밤나무 단지였다. 이 밤나무골을매화마을로 바꾼 이가 김오천 씨의 며느리 홍쌍리 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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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태어나 밀양과 부산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녀는 1965년 광양으로 시집오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남편의 사업이 잘되지 않아 빚이 뒷산보다 높았다. 사는 일이 팍팍했을 때 물 길으러갔다가 울퉁불퉁한 산길에 물을 다 쏟고 주저앉아 우는데 물항아리 내려놓은 돌 틈에서 매화 한 송이가 나풀거리면서 말을 건넸다.‘엄마, 울지 말고 내랑 살자.’ 하염없이 울고 난 홍쌍리 여사는 처녀 시절에 놀러 간 진해 벚꽃장을 떠올리고 시집와서 본 눈 속의 매화를 떠올렸다. 그해 가을 홍 여사는 시아버지가 심어놓은 밤나무를 베고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골짝마다 떨어진 밤을 주우면 그대로 돈이 되는 세상에 꽃을 피우겠다고 밤나무를베어내니 사람들은 미쳤다 했다고. 며느리 사랑이 지극했던 시아버지도 이 일만은 노발대발 반대하셨고 이에 홍 여사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몬 견디겠습니다. 아부지 저를 고삐 없는 말이라 여기시고 한 번만봐주이소’ 빌고 또 빌었다.
‘나무 심어 5년이면 꽃이 피고 10년이면 수확이 생기겠지, 20년이 지나면 사람들이 찾아오겠지.’ 이런 생각을 할 때만 해도 꿈만 같은 소리였고 소원이었다. 참고로 올해 열린 매화축제가 19회였고, 축제가 열리기전부터 매화마을에는 꽃을 보러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니 홍쌍리 여사의 바람이 그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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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트막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청매실농원 앞뜰에 서면 2,000여 개의 항아리가 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섬진강 물줄기가 보인다. 뒤로는 대숲이 하늘을 찌르고 있고 옆으로는 비탈에 매화나무들이 즐비하다. 키 작은 돌담을 따라 매화나무들을 둘러보는데 그 밑으로 보라색 제비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다. “이 이쁜 녀석들이 언제 이리 피었노.” 잡초를 뽑는 홍쌍리 여사의 손길이 바쁘다. 올해로 70 중반의 나이지만 그녀의일과는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흙과 매실을 만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헤어지면서 인사를 나누며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굵고 거친 손마디가 쉬지 않고 흐르는 강을 닮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소, 조심해서 올라가소.” 인사를 건네는 어르신의 웃음이 부드러웠다.

서승범 /사진 안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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