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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사춘기 아이의 엄마도 행복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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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되면 아이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엄마들이 심한 우울감을 호소한다. 아이에게 지극적성을 다하며 몰입했던 엄마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자꾸만 튕겨져 나간다. 세상을 향한 몸부림. 이제 아이의 손을 놔주고 거울을 보자. 아이의 인생만큼 엄마의 행복도 중요하니까.

 

김지혜 부모 코칭 전문가, 지혜코칭센터 대표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주인공 폴라는 프랑스 시골마을에 사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특별한 점이라면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 폴라는 청각장애인인 부모의 농장운영과 치즈판매를 도우며 평화롭게 살다가 우연히 합창단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음악교사의 강권으로 음악 오디션에 참가한 폴라. 만약 합격하면 가족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자신에게 의존하던 부모님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미안할까. 그럼에도 자기 삶을 찾아 떠나기로 선택한 폴라는 부모를 향해 수화를 곁들인 노래 ‘비상’을 부른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가야만 해요.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뿐. 부디 알아주세요. 저는 비상하는 거예요.”

 

모든 아이는 결국 부모의 품을 떠난다. 그런데 폴라처럼 부드럽고 정중하게 떠나면 좋으련만, 대개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문을 잠그고, 대답을 안 하고, 소리를 지르고, 눈을 부릅뜬다. 말 잘 듣던 내 아이의 변화에 어리둥절한 엄마는 아이에게 매달린다. 대답 좀 하라고, 말 좀 들으라고. 이제는 체격이 훌쩍 커버린 아이를 힘으로 어쩌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못한 상태로 말이다. 코칭센터를 찾은 미현 씨도 그랬다. 사춘기에 접어든 준우 엄마 미현 씨는 즉흥연극 수업에서 만났다. 수업에 참가한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준우가 사춘기를 겪는지 자꾸 튕겨나가는데, 그것 때문에 미치겠어서 여기 오면 좀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왔어요.” 그녀는 아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다고 했다. 분신처럼 보살피던 아들이 “됐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갈 때, 그 뒷모습에 그녀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즉흥연극에서는 참가자의 사연을 즉석에서 연극으로 재연한다. 그녀의 사연은 끈을 놓고 싶은 아들과 끈을 놓지 못하는 엄마의 대립으로 그려졌다. 아들역할을 맡은 배우는 벗어나려고 기를 썼다. 그럴수록 미현 씨는 끈을 잡아당기며 애원했다. 둘 사이의 긴장은 팽팽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그녀는 끈을 놓았다. 아들을 떼어놓을 마음의 준비가 된 걸까? 진정을 찾은 미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도 힘들었겠어요. 자기 길을 가려고 하는데 제가 자꾸 막으니까. 일단 좀 저도 저에게 집중해야겠어요.” 때가 되면 기고, 때가 되면 말을 하는 것처럼, 아이는 신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과업은 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해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없이 사춘기를 건너뛰면 어떻게 되는가? 몸만 자라고 마음이 자라지 않은 ‘어른이’로 지내다 20대 후반, 늦으면 30대에 혹독한 가슴앓이를 겪기도 한다. 그마저도 못하면 평생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만다. 성인의 2/3가 ‘정체성’ 확립을 못하고, 남을 쫓으며 산다. 평범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어른들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던 나도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대학시절 친구 따라 떠난 2달간의 배낭여행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학교를 쉬며 마음의 문을 닫고 안으로 침잠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퇴사를 하고 한창 사춘기 중인 27살 언니, 31살 오빠들을 만났다. 뒤늦은 사춘기는 나에게만 온 것은 아니었다.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는 만큼 사춘기는 괴롭다. 어차피 떠나갈 아이, 자연스런 때에 보내주면 어떨까? 짧은 치마가 사고 싶다고 하면 사라고 해주고, 일요일 오후 종일 컴퓨터 앞에 코박고 있으면 그러라 하고, 엄마 마음에 안 드는 친구 만난다고 해도 눈감아주고. 아이는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를 넓혀가는 중이니까 말이다.

 

아이만 보고 있어서는 시간이 더디다. 거울 없는 엘리베이터가 유독 길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아이 말고 나를 보자. 그 동안 아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소홀했던 소중한 우리 자신. 어느새 머리가 희끗거리고 눈가에 주름도 깊어지고 있는 우리 자신. 영양 크림 하나 사서 듬뿍 발라주고, 흰머리 가려줄 염색도 하고, 출렁이는 뱃살 좀 뺄 겸 운동도 시작하자. 오랜 시간 놓고 있었던 취미는 어떨까? 자녀교육서 말고 간만에 소설책은 어떤가? 아이가 자신의 세상을 걷는 사춘기. 엄마도 자기 세상을 시작할 좋은 때다. 엄마도, 마땅히, 행복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